[대변인 에세이] 겨울왕국의 진짜 ‘엘사’ (LH) 들

관리자
2021-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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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의 진짜 ‘엘사’ (LH) 들



“이걸로 잘리게 돼도 어차피 땅 수익이 회사에서 평생 버는 돈보다 많다”


3월 8일 JTBC는 LH 직원의 불법적인 투기 정황이 담긴 사내 메신저 대화 내용을 입수했다. LH 직원은 지난해 동료들에게 "다른 사람 이름으로 공공택지를 사겠다" 고 덧붙였다. 입사한 지 6개월 된 신입 직원의 말이었다.


내가 LH, SH를 알게 된 것은 초등학생 딸과 둘이 전세 월세를 전전하면서였다. 주변에서 내게 싱글맘이니 ‘한부모’ 1순위위인 LH와 SH를 권유했다. 장기전세임대주택은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엘사’ (LH에 임대주택에 사는 아이를 낮춰 부르는 신조어)로 딸이 놀림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그런 일쯤은 철학의 빈곤을 탓하며 딸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우리 모녀는 그런 식으로 시시해지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는 것을 공유한 사이였다.


처음부터 난항이었다. 나는 분명 ‘한부모’인데 한부모 증명서를 발급하는 데 수 십장의 서류가 필요했다. 수일을 구청과 주민센터를 오가며 ‘한부모’ 임을 입증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자영업자인 나는 실소득이 아닌 매출로 수입이 잡혀있었다. 가령 돈이 없어 월세를 살면 월세도 수입으로 계산되는 식이었다. 집도 차도 없는 나는, 이 황당한 시스템에 놀랐다. 몇 년 전이었지만 한부모 입증은 두 사람이 월 130만원 가량의 돈으로 생활하고 있을 때 가능했다. 130 이상을 버는 나는 한부모가 아니라 두부모 세부모 네부모로 파악되고 분류되는 셈이었다.


엄밀히 말해 부모가 몇이 있든 수입으로 일종의 부모 ‘수’를 산정한다. 그렇다면 ‘한부모’ 가정이라는 명칭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 땅에 모든 한 부모들에게도 어처구니없는 소식이 아닐까 싶다. 그 뒤로도 끊임없이 한부모 지원 서류를 넣으라는 말을 들었다. 일일이 설명하는 것조차 이골이 났다. 결국 나는 카드결제를 받고 현금영수증을 의무 발행해준 뒤, 꼬박꼬박 세금을 성실히 납부한 죄로 한부모 자격을 갖지 못했다.


억울할 일도 아니었다. 이 땅에 이런 일은 셀 수 없어서 말하기조차 민망하다. 그저 ‘한부모 지원자격’이라는 해괴한 명칭이라도 바뀌길 바랄 뿐이다. LH를 지원하지 않는 나는, 한부모가 아닌 무능한 부모가 되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24차례에 걸친 부동산대책은 집값 폭등, 전세값 두 배로 이어졌다. ‘영끌’ ‘빚투’ 등 신조어로 대변되는 주식·부동산 투자 바람에는 노동소득만으로는 주거를 구할 수 없다는 반증이다. 코로나19로 불어 닥친 한파에 ‘끌어 모을 영혼’조차 없는 나는 진짜 겨울왕국을 맞이했다. 봄이 오고 있다는데, 훈풍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살얼음 속에 몇 달을 숨죽여 지냈다. 훈풍은 집주인들 사이에 불었는지, 계약 1년도 안돼 집을 내놓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다.


LH 공직자들에게 힐난을 퍼부으며 피상적인 공직자 윤리를 운운하는 일이 소용없다는 것을 안다. 인간은 이미 모순적인 존재고, 다 저 나름의 이유가 있을 터이다. 법안을 발의하고 규탄하는 것이 정치가 할 뻔한 수순이란 점도 안다. 언론과 정치인들이 나서 부동산 정책에 성난 국민에 마음에 분노를 선사하고 있다. 각종 비판이 쏟아지고 공직자 윤리의 기강이 다시 거론된다. 과거 무수했던 ‘게이트’ ‘관피아’ 그러한 낱말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고 이 상황을 단번에 넘어설 수 있는 어떤 해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는 또 한 번 잊었던 정치와 윤리를 재검토한다.


LH직원의 발언은 사적이지만 공적발화이다. LH직원의 생각은 문제적이지만 맞는 말임을 부정할 수 없기에 우리는 어떤 질문과 마주한다. 결국 그들의 생각이 공동체에 유익한 것인가 따위 말이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공직자 윤리는 잠재적으로 정치의 문제로 풀 수밖에 없다는 사실만 남는다.


심상정 의원은 8일 이해충돌방지법을 발의했다. 진보는 자기중심적 이해와 결부된 정치로 도달할 수 없는 평등을 주장해왔다. 물론 법안과 제도가 만능이 아니란 점은 누구나 안다. 그저 무주택자들 한부모로 증명될 수 조차 없는 타자의 호소에 응답하는 것이 정치의 일일뿐이다.


코로나19 경기 한파, 진짜 겨울왕국에서 제 손아귀에 있는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이들의 힘을 제어하는 것, 자신이 가진 힘을 오로지 자신의 이해관계와 결부시킬 수 없게 하는 것, 그리하여 그것이 어떠한 측면에서 얼마나 비루한 짓이라는 것을 내 딸에게 말하기 위해 나는 그저 분주할 뿐이다.



2021년 3월 9일

정의당 서울시당 (공동대변인 여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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