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십시일반 밥묵차
  • 최성원
  • 등록 2021-02-17 22:47:40
  • 수정 2021-02-18 10:35:49

기사수정
  • 근사한 동지들을 만나다. 그리고 밥은 하늘이다.

언제부터 인지 나는 십시일반 밥묵차가 친정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곳저곳 사람이 아픈 곳에는 항상 함께 하시는 경애하는 최헌국목사님, </span>

아래 왼쪽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경빈엄마>


나는 물론 정의당이 친정이다. 그런데 당 생활 초기에 크게 낙심을 한 적이 있었고, 그 때문에 당 활동을 잠시 접었었다. 누구나 스스로 한 선택으로부터 회의심이 차오르면, 그보다 괴로운 일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당 밖으로 나온 마당에 어떠한 것에도 얽매임 없이 내가 일하고 남는 시간을 쓰기로 했다. 나의 마음이 끌리고 내 가슴이 아파오는 그런 현장을 선택해서 그 현장이 이길 때까지 달라붙어서 도왔다. 그런 현장이 하나, 둘 , 셋, 네 곳이 넘어가면서....

당 생활에서 받았던 상처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껏 살면서 수많은 노동해방 운동가들, 민족의 자주 통일을 염원하고 실천하는 통일 일꾼들 그리고 민주주의자들을 바라보기만 하며 가졌던 부끄러움으로부터 서서히 자유로워졌다.


 <이 분이 요즘 필자가 최애하는 유희동지. 초등생의 순수함도 가지신....>


그렇게 마음이 가벼워질 무렵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반대 투쟁을 하며 유희동지를 보게 되었다. 이곳저곳의 농성현장에 나타나서 밥을 나누는 동지인 줄은 이미 알고 있었고 또 그때마다 밥도 받아먹었다.

그중에서도 겨울철 집회에서 먹은 국밥이 단연 압권.

파인텍(스타플렉스) 굴뚝 농성이었던가? 어디였던가? 비를 맞으며 행진을 한 적이 있었다. 목적지인 농성장에 도착해서 우리 모두는 추위에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런데 밥을 나누면서 ‘더 있으니 먹고 또 오라~’는 나지막하고 다정했던 그 한마디 말은 

내 가슴을 얼마나 두드리던지 지금 생각을 해도 가슴은 뭉클하다.

 

<세계 최장기 426일 동안 홍기탁, 박준호 노동자가 고공농성을 벌였던 75m 굴뚝>




나는 단순한 사람.


먹을 것을 주는 사람과 따뜻한 말로 남을 위로해 주는 사람을 보게 되면, 그때부터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을 경계하는 내 마음속의 감옥으로부터 그를 탈옥시킨다. 흡사 진돗개가 평생 한 명의 주인을 따르듯이..... 그 사람을 죽자 사자 좋아하자는 사람이다.


다시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저지 투쟁으로 돌아가 보면,


강원도 도청부터 광화문까지 도보로 순례를 하는 투쟁이 있었다. 

(https://web.facebook.com/paul.choi.5458/posts/2357283914355809)

마지막 이틀 전 행진을 마치고 홍릉에 있는 세종대왕기념관 근처에서, 

박그림 대표를 비롯해서 순례에 참가한 사람들과 김기수 동지 그리고 유희동지 와 함께 늦은 점심을 먹게 되었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저지 도보 순례단. 마지막 날에 파고다 공원을 지나며>


마침 도보 순례 전에 일용직 노동을 하여 얼마간 돈이 있었고, 1년 전 그 은혜(^^)가 생각이 나서 밥을 서둘러서 먹고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척을 하며 계산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밥은 유희 동지가 그간 고생하신 박그림 대표와 일행들에게 작정하고 밥을 사려고 했던 날. 살짝 어리둥절하는 유희 동지에게 여차저차 해서 고마웠고 실제로 후원도 안 하면서 밥묵차 밥은 너댓번은 넘게 먹었으니 후원하는 셈 치고 돈을 냈다고 말을 했다. 


성격이 시원하신 유희 동지는 커피를 사주셨다. 


그 후에도 여러 현장에서 마주쳤고 그때마다 고마웠고 기분이 좋아졌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것 하나가 있는데, 사실 투쟁 현장에 탑차(밥차)가 나타나는 순간 게임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투쟁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집행부, 연대자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는 반면 

대화경찰을 포함하는 경찰들과 용역들 그리고 썩을 자본들의 머릿속에는 

‘클 났네... 쉽지 않겠어.....’ 라고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대화경찰 이후의 묘사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한번은 기수동지, 유희동지, 나 이렇게 셋이 경기도 화성인가 파업에 들어가는 대우전자서비스 동지들과 밥을 나누러 갔는데, 우리 밥묵차(탑차)가 자리를 잡으려고 몇 번 전진과 후진을 하고 있는 중에 동지들이 나지막이 이야기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밥묵차는 대유위니아 -(구) 대우전자 서비스의 본사 상경 투쟁에도 출동을 했다.</span>

 2020년 4월 27일>


“야~야~야~ 진짜 밥차왔어~” 

“야 우리한테도 밥차가 오네?~” 

그날 새벽부터 음식들을 준비해 달려오느라 조금 피곤했던 몸은 사라지고

 

어느새 내 몸은 만 19세, 하루에 설악산을 두 번 오르내리던 그 소년으로 변환이 되어있었다.


ㄷㄱ

십시일반 밥묵차를 돕는 방법을 알아보려면, 아래 클릭!!
https://web.facebook.com/groups/1615247468735172/?_rdc=1&_rdr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